"안녕."
나를 부르는 소리가 나서 마당에 나가보니 그 아이가 있었다. 전학을 간 아이. 먼 곳으로 이사를 갔다고 전해들었는데. 우리 집에는 왠일일까. 한시가 좀 넘었다.
"밥 먹었어?"
아이는 답을 미루고 있었고. 엄마에게 밥 좀 달라고 했다. 우리집은 4가구가 사는 다세대 주택이었지만 마당이 있어서 아이들이 자주 놀러왔었다. 늦은 밤을 제외하고는 초록색 대문은 잠그지 않고 열어두었다. 도둑이 들어도 훔쳐갈게 없는 당당함으로. 엄마는 여덞식구를 먹이고 입히느라 바빴지만, 집에 사람이 오는 것은 좋은 일이라며 친구들이 오는 것을 반겼다. 우리 엄마는 손님이 오면 3가지 선물을 준비했다는 유대인의 피가 흐르나보다.
그 아이는 엄마가 내 준 상을 받고 웃으며 밥을 허겁지겁 먹었다. 식사가 마치고 마당으로 갔다. 아버지가 오래된 나무를 가지고 만들고 장판을 깐 평상이 있었다. 사철나무 그늘에서는 무당벌레가 몇 마리 날아다니고 있었고, 우리는 사철나무 열매를 뜯어서 열어보았다. 화단에 붉은 사루비아가 피어있어 뜯어서 쪽쪽 소리나게 빨아먹었다.
"이거 니꺼야."
아이는 내게 선물이라며 내밀었다. 거즈 천 두개를 잘라서 시접면을 접어 붉은 실로 꼼꼼하게 홈질을 한 직접 만든 손수건. 갑작스런 선물이 고맙기도 하고 낯설기도 했다. 단발머리에 눈이 길고 팔이 가늘어 갸냘퍼보이는 이 여자아이가 손으로 한 땀 한 땀 만들었구나. 더이상 학교를 다닐 수 없게 되었고, 아이는 공장에서 일을 한다고 했다. 부모님이 따로 살고 자기는 아버지와 같이 있다고. 주소도 알려줄 수 없고 전화기도 없다고 가슴이 바늘로 콕콕 쑤시듯이 아파왔다. 전학가버린 아이의 자리는 금방 채워졌고 난 그 아이의 빈자리를 아쉬워하지 않았다. 지금 이 아이는 내가 너와 함께 한 반에 있었다고 알려주려 온 것 같았다. 미안해해져 물어보았는데 주소도 알려줄 수 없고 전화도 없다고 했다. 다음에 내가 보고싶으면 이렇게 찾아오겠다고. 시끄러운 공업용 미싱소리가 울리는 듯 했다. 운동장에서 더이상 나와 뛰어놀 수도 없고, 그림을 그리지도 않고 미싱바늘에 촛점을 마추고 고개를 숙이고 있을 이 아이를 생각하니 맘이 아팠다.
"나 , 괜찮아. 일 재밌어."
내 맘을 알기라도 한 건지 그아이는 그렇게 말했다. 아이가 집에 갈 시간이라고 했다. 난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 주고 버스를 탄 그녀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녀가 준 손수건을 사용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오래된 마호가니 책상서랍에 두었다. 이후 전화도 없이 나를 찾아 우리집에 왔으나 난 친구집에 놀러가 있어서 만나지 못했다. 그 손수건은 이사를 하며 잃어버리기 전까지 잘 간직했다.
가끔 들여다 보았다. 그아이는 나중이라도 학교는 갔을까? 아직도 미싱을 돌리고 있을까?
어딘가 숨어있을 아이들을. 돈이 없어 소외되어 내눈에 보이지 않는 아이들. 어디선가 잊어버린 그 아이를 만나고 싶었던 것 같다.
가난하고 소외되었던 그 시절의 그 아이가 가끔은 생각이 난다.
copyright 2017. 안정현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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