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호가 상담실로 들어오는 순간 찌든 담배 냄새가 가득했다.
민호는 앨리스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는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X 나 힘들어.”며 거친 말을 내뱉었지만, 왠지 한풀 꺾인 모습이었다.
앨리스는 그의 거친 말과 행동이 불편해졌다.
학교 창문을 부수고 상담실로 오게 된 민호는 선생님과 친구들에 대한 화를 표현했다.
민호는 선생님들이 자신만 싫어하고 미워하는 것 같다며 억울하다는 소리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왠지 한풀 꺾인 것 같은 민호가 고개를 푹 숙이더니 머리를 감싸 안았다.
“엉망이에요. 저.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어요.”
앨리스는 거칠고 강한 민호의 모습 안에서 두려워서 떨고 있는 소년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폭력을 내지르는 아이들의 내면에 겁먹은 아이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친구가 죽었어요. 내가 아는 사람도 죽을 수 있구나. 녀석과 매일 그렇게 달릴 줄 알았는데. 이젠 그 날들은 없는 거죠. 흘러내리던 피. 저요. 저 좀. 무서웠어요. 몸이 덜덜 떨렸는데. 친구의 몸은 차가워져 가고. 걘 하늘로 가버렸어요.”
“그런데, 전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물끄러미 봐라만 보고 있었어요. 아무것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민호는 그날 장면을 잊으려고 해도 잊어지지 않는다 했다.
얼마전 민호와 친구들은 오토바이 절단기로 훔친 오토바이를 탔었다.
시끄러운 오토바이 경적소리와 음악소리를 귀에 찢어지도록 들리게 말이다.
민호의 친구가 평소처럼 헬멧을 쓰지 않고 오토바이를 탄 것이 죽음으로 이르는 길이 될 줄은 몰랐다.
민호는 혼자 멍하게 창가에 앉아있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고 한다.
혼자인걸 견디기 힘들다며 목소리가 떨리더니 울기 시작했다.
슬픔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술로 몸을 적시고 담배로 매캐한 연기를 만들어내어 취해도, 잊어지지 않았다고 했다.
잃어버린 것을 대하는 방법
민호처럼 내 안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다른 방식으로 표출했던 적은 없는가?
그리고 내게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잃어버린 것은 없는가?
앨리스는 민호에게 빈 의자를 친구라고 생각하고 이야기를 하게 했다.
친구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 함께 가고 싶었던 곳, 네가 가서 얼마나 슬프고 힘든지, 다친 너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던 바보 같은 자신의 모습, 혼자만 살아남아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리고 꿈에 너를 보면 도망가게 된다며 정말 미안하다고 이야기했다.
앨리스는 연약한 그의 모습을 바라보는 첫 번째 타인이 되었다.
민호는 친구의 납골당을 가서, 하고 싶은 말들을 적은 종이비행기를 적어두고 왔다고 했다.
집에 와서 울고 또 울다가 지쳐서 잠이 들었단다.
새벽녘에 일어나니 배가 고프고 힘이 없어서 허겁지겁 밥을 먹었다고 했다.
그때 문득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민호는 부모님의 권유로 유학을 가기로 했고 새로운 환경에서 시작하고 싶다고 했다.
“이제 밤에 더 이상 친구의 꿈을 꾸지 않아요. 그래서 가끔 그 아이를 잊은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해요. 그래도 잊지는 말아야죠.”
민호는 잠겨버린 서랍처럼 숨겨놓은 감정을 털어놓은 후 현실에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민호가 친구를 때리고 공격적인 행동으로 슬퍼하는 감정을 만나지 않은 것처럼, 지금도 과거의 감정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충분히 애도하지 못한 슬픔의 감정들은 폭발적인 분노나 무기력해진 몸으로 찾아온다.
체험되지 않은 감정들은 어떤 식으로든 표출되기 마련이다.
고통으로부터 도망가지 말고 충분히 끌어안기를 바란다.
오랫동안 만나기 힘들어했던 감정을 털어놓을 대상이 있다면 이야기를 나누어도 좋고, 혼자만의 방안에서 빈 의자를 두고 이야기를 해보아도 좋다.
피해야 할 감정은 없다. 슬픔 또한 내게 필요한 감정이며 선물이다.
마티스 1952년 작-왕의 눈물
이메일: maumdal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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