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아는 아버지의 일기장을 읽다가 유명가수 윤설영이 자신의 친엄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뿔테 안경을 쓴 수아는 친구를 사귀는 것도 힘들고 시도 때도 없이 잔소리만 하는 엄마에 대한 불만은 커져서 가수 윤설영을 찾아 가출한다. 영화 <열세 살 수아>의 시작이다.
내 옆에 있는 이가 진짜 부모가 아니라 고귀한 혈통의 친부모가 있을 거라고 믿으며 자신의 혈통이 바뀌기를 원하는 것을 ‘가족 로맨스’라고 한다. 나 또한 어린 시절 이웃집 아주머니가 말하는 대로 내가 영도다리 밑에서 주워온 아이는 아닐까 의심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지금 부모가 친부모가 아니라면 수아처럼 텔레비전에 나오는 연예인 제이가 내 부모였으면 좋겠다고 바랬다. 그녀가 부모가 된다면 피아노 학원이랑 미술학원 등 배우고 싶은 학원을 모두 다 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중견 배우로 활약하는 그녀가 나오면 어린 시절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는다.
드라마에서 자주 반복되는 주제 또한 출생의 비밀이다. 착하고 순수한 주인공은 열심히 살아가지만 가난한 경제력과 욕심 많은 주변 사람들로 인해 고통을 받는다. 그러던 어느 날 진짜 핏줄을 찾게 되는데 좋은 성품의 부유한 친부모를 만나서 행복한 결말이 이루어진다. 출생의 비밀이 풀리면 주인공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보면 ‘가족 로맨스’는 보편적인 감정인 것 같다. 부모를 바꿈으로써 현실을 바꾸는 마술적인 기대감을 갖고 있는 것이다.
결혼연령이 늦어지다 보니 직장을 다니면서도 부모와 함께 사는 경우가 많다. 공부와 일로 방청소와 빨래 등은 부모에게 미루고 생활비를 내지도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소소한 일로 나이 든 부모와 부딪히는 경우는 잦아진다.
“별 것도 아닌 거 가지고 저한테 그러려면 집을 나가라고 했어요.”
“제가 이렇게 눈치 보고 사는 게 우리 아버지 때문인 거 같아요.”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나아지는 게 없는 것 같다. 좋은 부모 밑에서 자라 든든한 지원을 받는 주변 사람들과는 출발선부터 다른 것 같다. 부모에 대한 원망을 커져만 간다.
그러면서도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못한다. 그들에게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못하는 이유를 물으면, 돈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저런 세금을 떼고 아울러 저번 달 카드 값을 내고 나면 월급통장은 그저 지나가는 것일 뿐 수중에 남는 것도 없단다. 부모를 독립해서 살아가려면 살림도구를 장만하는 것, 공과금을 정리하는 것, 집을 알아보는 것 할 일이 산더미다. 용기를 내서 독립하려고 여러 집을 알아봤지만 작은 방 한 칸의 월세 값이 만만치 않다. 경제적으로 독립할 생각도 없고, 집안일을 하는 것도 귀찮고, 혼자 살아갈 자신은 더더욱 없어진다. 그러니 부모가 변해야 된다는 결론에 이른다.
부모의 행동을 바꿔보려고 노력도 하고 잘못한 일에 대해 사과도 받으려고 한다. 그게 뜻대로 되는 경우는 드물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성숙한 사람은 드물다. 또한 나이가 들수록 사람의 자신의 모습만을 고집한다. 대다수의 부모들이 자녀의 비난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부모는 지금껏 많은 희생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자녀의 비난 섞인 말들에 화만 올라온다. 때로는 부모가 자녀에게 사과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부모에 대한 원망은 이후에도 밀려왔다.
어른이 된 이상 ‘쉬운 선택’은 없다. 경제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하고 있다면 부모의 듣고 싶지 않은 잔소리들을 들어가면서 자유를 포기해야 한다. 반면 자유를 누리고 싶다면 경제적인 어려움과 물리적인 불편을 감소하고 독립하면 된다. 계속되는 피해자 역할은 스스로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가해자-피해자 논리로 부모-자녀 관계를 바라보고 있다면, 몸은 어른이지만 나이 들어가는 부모의 인정을 받기를 갈구하는 어린아이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의 중요한 대상과의 관계가 현재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프로이트의 말에 동의한다. 그러나 심리학이 마치 모든 원인을 ‘과거의 상처’를 탐색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편견이다. 부모와 함께 살면서 불평불만을 멈추지 못한다면 살펴봐야 할 때다. 부모와의 관계에서 고통스럽고 아팠던 것은 무엇인지 출생의 비밀이 있어 새로운 부모가 생긴다면 바라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보아라. 나에 대한 Me-story를 적어본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영화 <열세 살 수아>에서는 출생의 비밀도 없었고 수아의 ‘진짜 부모’가 나타나는 일은 없었다. 엄마의 가게는 힘든 상황으로 문을 닫고, ‘영 분식’이라는 초라한 간판의 낡은 노란 버스가 식당이 된다. 꿈에서 버스가 움직이고 수아는 죽은 아버지를 만나 작별을 한다. 이 애도 작업을 통해서 꿈에서 깬 수아는 가수 윤설영이 친엄마일 것이라는 미련,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집착을 버린다. 부모에 대해 미해결 된 감정을 억압하지 않고 충분한 애도작업을 통해 흘려보내야 한다. 시간의 파도에 떠내려 보내야 할 것과 지금 여기에서 남겨야 할 것은 무엇인지 선택해야 할 것이다. 이제는 부모의 삶은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내 삶의 버스를 운전하고 나아가야 할 사람은 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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