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온몸에 가시를 세우고 주변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싶을 때가 있다. 오로지 혼자 가만히 있고 싶은 날. 그런데 세상과 거리를 두고 싶은 날이 1년 365일이 된 사람이 있다.
현아는 진정한 ‘집순이’다. 약속이 생겨도 비가 오면 나가기 싫어서 바로 취소한다. 부모의 바람대로 고등학교 졸업 후 유학을 갔지만 한 달만 수업을 듣고 그 후에는 학교에 가지 않았다. 그렇게 낯선 외국인을 피해 1년간 집에만 있다가 결국 부모에게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울먹이며 말했다. 부모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현아를 한국으로 데리고 왔다.
부모는 더 이상 현아에게 학업 스트레스를 주지 않기로 했다. 다시 수능을 보게 하고 집에서 먼 지방 대학에 입학시켰다. 감정 표현이 부족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던 현아는 자신보다 나이 어린 동기들과 친해지기 힘들었다. 자취방에서 혼자 치킨과 짜장면을 배달시켜 먹으며 마음의 허기를 채우다 보니 몸무게가 점점 불어났고 나중에는 살이 찐 모습을 남들에게 보이기 싫어서 수업을 제대로 듣지 않았다. 낮은 학점에 학점 이수도 제대로 하지 못해 졸업이 힘들어지자 현아는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했다. 결국 매사에 의욕이 사라져 스스로를 고립시키며 집 밖으로도 나가지 않게 되었다. 부모는 상황이 심각해지고 나서야 현아를 상담실로 데리고 왔다.
세상으로부터 숨어버린 은둔형 외톨이
상담을 하면서 10대부터 40대까지 다양한 은둔형 외톨이들을 만났다. 그들이 마음을 닫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친한 친구에게 배신을 당해서, 오랜 기간 부모와의 관계에서 거리감을 느껴서, 학업에 실패해서, 취업에 실패해서, 시험 준비를 오래 하다가 취업 기회를 놓쳐서 등 이런저런 이유로 숨는다. 누구나 고통은 피하고 싶다. 상처받기 싫고 실패하고 싶지 않아서 세상과 거리를 둔다.
심리학에서는 이들을 ‘은둔형 외톨이’라고 하지 않는다. 타인과의 관계에 관심이 없고 감정 표현이 부족해 사회 적응이 어려운 이들 중 일부 ‘정신분열성 성격장애’나 '회피성 성격장애'가 있다고 말한다.
영화 〈슬로우 비디오〉의 주인공 여장부는 동체 시력이라는 특별한 능력을 가졌다. 하지만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받고, 유일한 친구인 수미도 같이 따돌림을 당할 것 같아 자신이 먼저 그를 떠난다.
영화 <슬로우 비디오> 스틸컷
은둔형 외톨이인 여장부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세상과 담을 쌓고 지낸다. 오랫동안 마음을 닫고 살다가 서른 초반이 되어 CCTV 통합관제센터에서 일을 시작한 그는 간단한 대화조차 서툴다. 많은 생각을 하지만 밖으로 나오는 대답은 한 단어나 짧은 문장으로 끝나고 만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에게 ‘좀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받는다.
심리상담을 하는 중에 현아에게서 유리벽 같은 거리감이 느껴졌다. 그녀는 혼자가 편하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 어디에도 소속감을 느낄 수 없다고 했다. 중학교까지는 친한 친구들이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친구들을 멀리했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대부분의 친구가 부유했고, 상대적으로 가난했던 현아는 심한 열등감을 느꼈다. 친구들은 자기보다 멋지고 나아 보였다. 끊임없이 자신과 비교하고 혹시나 실수라도 할까봐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말하는 것도 힘들었다. 고3이 되면서 부모님의 사업이 성공해 집에 여유가 생겼지만 그녀는 자신이 가난하고 부족하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다음화에 계속
안정현
14년 경력의 심리상담사,
한국상담심리학회 상담심리사 1급 703호(주수퍼바이저)
한국임상심리학회 임상심리전문가 1246호
한국정신건강상담사협의회 정신건강증진상담사 1급, 보건복지부 청소년상담사 2급
마음달심리상담 센터 대표
저서<나를 사랑하는 일에 서툰당신에게>
저서 <나라도 내편이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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